현대 브랜딩에서 디자인 시스템의 중요성은 이제 너무나도 당연한 전제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브랜드 가이드라인이 ‘일관성’을 이유로 단순 로고를 복붙하는 데 그치거나, ‘다양성’을 내세워 맥락 없는 그래픽이 난무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화려한 로고 디자인과 모션 그래픽 뒤에 가려져, 정작 디자인 시스템의 중요성과 가치가 간과되기 쉬운 현실이죠.
이번 주 뉴스레터에서는 최근 주목할 만한 디자인 시스템 정립 사례를 소개합니다.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브랜드 네임을 고수하다가 론칭 후 거의 1년마다 리브랜딩을 단행한 사례도 함께 살펴봅니다. 디자인 리뉴얼로도 해결되지 않는 근원적 문제가 있다면 바로 잘못된 브랜드 네임이 아닐까 싶네요. 브랜드 네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해봅니다.
정교하고 섬세하게 설계된 체코 정부 디자인 시스템
리브랜딩 배경과 내용 : 체코 국가 행정부를 위해 새로운 상징과 디자인 시스템 개발. 기존 사자 문양을 현대화하여 단순하게 표현했으며, 체코 국기의 3가지 색을 기반으로 운영. 또한 전용서체 Czechia Sans도 함께 개발
brandB’s Comments : 아마 브랜딩 업계의 많은 분들이 이 사례를 보고 몇 년 전의 대한민국 정부 상징체계 프로젝트를 떠올리실 것 같아요. 비록 불미스러운 국가적 사건에 휘말려 그 의도와 목적이 십분 발휘되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프로젝트 자체는 꼭 해야만 했던 아주 중요한 브랜딩이라고 생각해요. 다소 획일적 성격이 강했기에, 최근 하위 단체들이 다시 기존의, 또는 새로운 로고를 사용하기 시작한 우리나라와 달리 체코 정부 디자인 시스템은 심볼에 추가된 색상 띠와 이름에 적용된 색상으로 위계 체계를 구분하고 있어요.
로고 변화 없이 하위 호텔의 개성을 표현하다, Viceroy
리브랜딩 배경과 내용 : 프리미엄 호텔&리조트 브랜드 Viceroy가 각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디자인 시스템 정립. 대표 로고는 유지하되 네임의 O를 지역 별 상징 심볼로 표현, “따로 또 같이” 디자인의 정석을 보여줌. 지역 심볼 외에도 패턴을 함께 개발.
brandB’s Comments : 패밀리 브랜드의 딜레마라고 할까요? 효율성을 위해 하나의 브랜드 네임과 로고를 함께 사용하지만, 반대로 하위 브랜드의 특색은 표현하기 어려웠죠. 또 하나 둘 씩 예외 사례를 적용하다보면, 결국 전체 브랜드 시스템이 중구난방,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지기 쉽상이고요. Viceroy는 그런 어려움을 스마트하게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보여줍니다. 다만 그 많은 하위 호텔의 상징물과 패턴을 일일이 개발해야 하는 수고로움은 감안해야 하겠죠!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NGO 브랜딩, Brot fuer die Welt
리브랜딩 배경과 내용 : Brot fuer die Welt(세계를 위한 빵)은 60여년 역사의 기독교 기반 세계 원조 단체. 젊고 적극적으로 변화하는 브랜딩 전략에 따라 로고 리뉴얼과 디자인 시스템 정립. 의도에 따라 시선을 유도하고 존재감을 강화하는 “Vibrants” 디자인 시스템이 인상적.
brandB’s Comments : 리뉴얼된 로고는 일반인이 변화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을 정도로 기존 로고의 정체성을 계승했습니다. 로고 중심으로 아카이빙하는 브랜드비 사이트에서는 여러분의 눈에 잘 띄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에게 있어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바로 “착한 모습”만을 강조하던 NGO가 활기차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었어요. 이제 더 이상 빈곤 포르노만이 NGO의 수익원이 되어서는 않된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세대를 넘어 해외로 확장하는 국민 잇몸약, 인사돌
리브랜딩 배경과 내용 : 1978년 출시한 우리나라 대표 잇몸약 인사돌의 로고 및 패키지 디자인 시스템 리뉴얼. 기존 노년층에서 중장년층까지 고객을 확대하고, 해외 시장까지 고려했다고.
brandB’s Comments : 아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인사돌을 모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비록 실제 복용하지는 않더라도 지속적인 TV CF를 통해 세뇌되다시피 했으니까요. (참고! 솔직히 잘파 세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번 리뉴얼 사례를 접하고 기존 로고와 패키지 디자인을 잠깐 살펴봤는데요, 꾸준히 조금씩 변화해온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헤리지티를 계승하면서도 현대화를 잊지 않는 모범생과 같은 브랜드라고 할까요? 이번 리뉴얼도 눈에 아주 확 띄지는 않지만, 훨씬 세련되고 체계적인 디자인 시스템이 정립되었습니다.
결국 잭과콩나무 스토리를 버릴 수 밖에, 펄스랩
리브랜딩 배경과 내용 : 잭앤펄스는 삼양식품이 2023년 론칭한 콩으로 만든 건강 음료 브랜드. 2024년 건기식 및 간편식으로 제품 라인을 확장하며 리브랜딩.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브랜드 네임을 펄스랩으로 변경.
brandB’s Comments : 2024년 잭앤펄스 리브랜딩 소식을 접하면서 참 난감한 브랜딩이라고 생각했어요. 로고와 패키지 디자인이 세련되어진 것은 분명했지만, 이 브랜드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죠. (기존 브랜드 정보를 보시려면 클릭)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브랜드 네임이예요. 콩으로 만든 제품의 특징을 표현하고자 ‘잭과콩나무’라는 메타포를 도입했는데요, 문제는 이 콩을 의미하는 ‘펄스Pulse’라는 단어가 일반인은 전혀 알 수 없는 전문용어에 가까운 단어라는 것이죠. 일반 소비자가 이 네임을 보고 ‘잭과콩나무’를 연상하기라는 불가능에 가까웠어요. (그리고 솔직히 잭과콩나무가 ‘콩’이라는 원료의 이름을 공유하는 것 외에 제품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로고 디자인에서는 Pulse의 또다른 뜻인 ‘맥박, 리듬’을 표현하고 있었으니, 이 브랜드가 무엇을 표현하고 전달하려고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론칭 후 1년마다 리뉴얼을 하고, 결국은 브랜드 네임을 변경하게 되었는데요, 잘못된 브랜드 네임이 초래한 어마어마한 리뉴얼 비용(디자인 개발 뿐 아니라 제품 패키지 변경 비용까지 감안해야 합니다!)을 생각해 보면, 브랜드 초기 전략 수립과 네임 개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꼭 제대로된 전문가에게 맡기세요!!!